타인의 단점에 대해 생각하다.


누군가에 대해 화가 날 때는 그 사람의 장점을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길 때는 그 사람의 단점에 대해 생각한다. 청개구리같은 심보지만 어느 한쪽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싫기 때문에 생긴 버릇으로, 예전에는 전자에 좀 더 치우쳐 있었다. 예를 들어, 고백하자면 이전에 사귀었던 사람에 대한 좋은 추억에 관한 글들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 사람에 대해 화가 났을 때 쓰여진 것들이다. 화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 사람의 장점은 변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풀릴 감정에 골몰해 있느니 변하지 않을 좋은 부분들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장점은 장점이고 단점은 단점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보완해줄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덮어줄 수는 없다. 평소에는 다정다감하지만 다툴 때는 상대에게 욕설을 뱉는 연인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좋은 연인일까? 욕설을 듣는 것은 괴롭지만 평소엔 이러저러하게 좋은 사람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정말 서로에게 바람직한 태도일까?

물론 겉모습뿐인 관계라면 상대방의 단점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단점은 회피하고 장점 중에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 취하고 넘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연인 혹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알맹이가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상대의 단점이 내게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그때는 내가 받는 영향의 정도에 따라 상대방과 어느 정도의 관계를 맺는 것이 현명한지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도가 심하다면 잘라내거나 혹은 거리를 두는 방도를 생각해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나도 그렇지만, 단점은 내버려둬서는 고쳐지지 않는다. 한두 번 지적해주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계속해서 나쁜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고치도록 돕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어느날 갑자기 쾅 하고 번개가 떨어져서 상대가 자신의 단점을 깨닫고 고치게 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닌 한 관계 유지를 위해 상대방의 단점을 회피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좋은 점이 있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단점에서 고개를 돌린다면 그 단점은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힐 것이고 그것은 결국 두 가지의 결말을 낳을 것이다. 지속적인 충돌로 인해 관계 자체가 끊어지거나, 혹은 자신이 상대방의 단점에 적응해버림으로써 관계가 유지되거나.

나는 언제나 후자의 방향으로 가고자 애썼지만, 그건 바람직한 해결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대안이었다. 사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 건 훨씬 전이지만, 그때도 나는 불평만을 늘어놓을 뿐 실질적으로 뭔가 하려고 들지는 않았으니까. 지금은 되도록이면 서로의 관계가 더 긍정적으로 발전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면서 최대한 협의를 통해 서로의 단점들을 인정하고 고치거나 완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완화'라는 표현을 덧붙이는 것은, 인간의 모든 단점은 '사라져야만 할 것'이라고 단정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나쁜 건 몽땅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심각한 부분이 아닌 한에는 사람이 그렇게 완벽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단점이 없는 사람이란 어쨌든 존재하지 않으니까.


+ 글을 다 쓰고 나서 뒤적거리다가 2년 전에 썼던 포스트 : 단점.을 발견했다. 2년 전의 나, 너 참 느긋했구나. 하긴 그때는 뭔가 적극적으로 타인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 사람이란 보편적으로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이 잘 서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설령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몰라서 그렇지 한 두어 번만 가르쳐주면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줄 알 거라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믿음에 회의가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좋지 않은 줄은 알면서도 단지 나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으며 오히려 옳은 것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들을 꽉 막혔다느니 하며 무시한다. 나는 이제 슬슬 그런 인간들을 봐주는 데 신물이 난다.

by 고이 | 2008/07/07 20:11 | 잡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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