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0일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어릴 때, 그러니까 10대였을 때의 내 입버릇은 '뭐 어때' 와 '어떻게든 되겠지' 였다. 체념은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만사에 느긋해서, 따돌려지거나 괴롭혀질 때도 크게 상처를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괴롭히는 게 뭐 어때서.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그저 그 아이들도 본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그런 게 잘못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만일 그러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돌고 도는 거니까 똑같이 당하거나 그런 타인을 보며 깨달을 수도 있을 거고. 혹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나이들고 나면 지금의 내게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록 내 눈 앞에서가 아니더라도 모든 게 자연스레 잘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나를 푹신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어릴 때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쉽게 넘긴 덕분인지 그네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앙금조차 희미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뭔가가 천천히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란 어지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사실 시간은 그들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적당한 시간에 무언가 변화의 계기가 나타나 주지 않는 한, 혹은 변화의 계기가 나타났는데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한 인간은 계속 그 자리에서 정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거나 말거나 실제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마도 타인보다도 내 자신부터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막연히 추측해볼 뿐.
빨리 대학에 가고 싶어서 학교를 때려치웠다. 실제 나이는 그에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생활부터 우선 이십대의 영역에 들어섰으면 했다. 사실 이십대의 영역이란 게 뭔지는 몰랐다. 그래도 그렇게 추정되는 것- 대학을 원했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입학 얼마 전 1학년들이 모두 모인 자리,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다가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은 학교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이 싫어 한 정거장 뒤로 천천히 걸었다. 햇살은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고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걸으며 나는 왜 진행하는 선배들의 재촉을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느끼면서도 일어날 수 없었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거라곤 단지 나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 뿐이었다.
작년, 정확히 4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동기들이 군대다 휴학이다 하며 한두 명씩 보이지 않게 될 때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 있었다. 그들과 같이 휴학을 하지 않은 건,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강의를 듣고 과 행사를 등한시하고 축제에서 발걸음을 돌리며 오로지 도서관 구석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만을 즐겼다. 나는 둥 떠있는 섬 같았다. 나는 그게 내가 변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한다는 게 무엇인지, 언제가 되면 변하게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그 중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햇빛마저 뜨겁게 느껴지던 어떤 날에는 좀 울고 싶기도 했지만 점차 그런 감정조차 사라져갔다. 어차피 나는 변하지 못했으니까, 괜찮았다.
졸업을 하고 1년이 지났다. 먹고살 수단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자체는 지금까지와 비슷해서 그리 힘들지 않지만, 그러나 어째선지 더 이상은 '뭐 어때' 라든지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두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공포다. 마치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그렇다. 그리고 사람보다 무서운 것이 생긴 순간에서야 내가 사람을 무서워했음을 깨달았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그건 마치 언제든 나를 잡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거대한 육식 동물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과 마주치지 않길 바라며 숨어 있기도 하고 이쪽을 못 보길 바라며 시야 밖으로 슬금슬금 도망치기도 하고 어쩌다 마주치게 되면 싸울 생각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도망칠 생각이 없는 듯 웃어 보이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에 바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저것은 언제든 수틀리면 나를 잡아먹거나 혹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내버릴 수 있으니.
사람과 마주치지 않고 지낼 수는 없다는 것과 사람이라고 해서 무작정 나를 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억지로 인정하게 된 지금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사람을 만나면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애쓴다.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쉽게 해하려 들지는 않을 테니까.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다면 당장 나를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껴지면 그렇지 않음을 확신하게 되기 전까지는 견디지 못한다. 나를 싫어하는 거대한 육식 동물이 한 마리 있다는 것을 알고 숲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 by | 2008/06/20 21:55 | 기억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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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을 싫어하진 않아요. TV속에 나오는 호랑이들은 참 멋지잖아요. 그 사나운 모습이며 성질까지도 매력적이죠. 하지만 그들을 야생에서 실제로 맞닥뜨리며 산다면 결코 멋지다는 말을 하지 못할 거에요. 훌륭히 그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냥꾼이거나 공존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가진 현자가 아니라면 말이죠. 제가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한계는 딱 거기까진 것 같아요. 적어도 현재로서는요.
연애를 한다는 것도 그래요. 운 좋게 사이가 좋아져서 '나를 해치면 안 돼' 하고 길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어딘가에 사나운 본성이 아직 남아 있어서 나를 콱 물어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하면 무섭지요. 사람은 동물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인데다 아무래도 남자와 연애를 해야 하는 몸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남자의 경우에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람보다 사회지만.. (한숨)
저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텅 빈 껍데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아요. 껍데기는 웃고 있는데 속은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죠. 진심을 전해야만 진심이 돌아올텐데 그러지 못하니, 때로는 이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손을 내밀어줄 타인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설령, 마치 비공개님같은 분께서 짜잔- 하고 나타난다고 해도 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변하고 있는 걸까요? 부디 지금이 그 과정의 일부였으면 좋겠습니다.
내 주변은 자꾸만 변해가는데 나는 계속 이 자리에 남아서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뭐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의 제 상황으로선 쉽지 않은 이야기죠.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기회가 떨어지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무섭도록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갈 따름. 스스로가 나아지고 있는건지 아닌건지를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말이에요. 저도 많이 두렵습니다. 20대는 다들 이런 걸까요?
요즘은 그래서인지 스스로가 더 감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눈에 보이면, 예전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기도 했는데 지금은 마음으로부터 분노가 일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하지만 현실에 더 귀찮은 일을 덧붙이지 않으려면 대놓고 뭐라할 수도 없지요. 그런다고 들을 사람들도 아니니까 더 그렇기도 하고요. 어쩌면 스스로의 위치나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 탓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도 좀 둔해지고 싶어요. 흐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