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감정


(17번 주제 '깨어남'에서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오리는 이미 안개 자욱한 호수 위에 있었다.

- 꽉

무언가 괴롭고, 굉장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오리는 그저 오리.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본능으로 두 발을 파닥파닥 움직였다. 물이 철벅이는 소리와 이리저리 퍼져가는 물결로 조용했던 호수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그렇게 몇 번이고 빠져버릴 뻔 하다 가까스로 물 위에서 균형잡기에 성공한 오리는 만족스럽게 울었다. 방금 전의 균형잡기로 수없이 깨졌던 호수의 고요는 오리의 울음소리로 한번 더 깨졌다. 하지만 그 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있는 것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조용한 호수 위에는 오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오리는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뭔가 먹을 것이 없을까? 고개를 숙여 물 밑을 두리번거려 보아도, 바로 코앞도 보이지 않을만치 자욱히 낀 안개 속을 부리로 휘저어 보아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물과 안개 뿐이었다.

오리는 몸의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발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물결 하나 없이 잔잔한 호수 위라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오리는 그렇게 천천히 자신의 본능이 가리키는 쪽으로 안개 자욱한 호수 위를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헤엄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왔을까, 오리는 점차 눈앞의 안개가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저것은 무엇? 혹시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싶어 오리는 발을 좀더 빨리 움직였다. 그러다 또 한번 물에 빠질 뻔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오리는 '그것' 근처로 갈 수 있었다.

오리보다 훠얼씬 더 큰 '그것'(여기서 오리는 '그것'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은 물 위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때때로 오리가 깜짝 놀랄 만큼 빨리 움직였다가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그것'과 어쩐지 빠져들 듯한 '그것'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는 새, 뭔지 모를 기분이 오리의 작은 몸 속에 소용돌이쳤다. 이미 배고픔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봐!"

안개 저편에서 들려온 소리와 함께 '그것'의 움직임이 멎었다. 소리를 낸 것은 '그것'의 절반 정도의 크기였지만 어쩐지 '그것'을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 오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오간 끝에, '그것'은 천천히 소리를 낸 것을 따라 호수를 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조금 전과 비슷한, 하지만 어딘가 다른 감정이 오리의 몸 속을 꽉 채웠다. 오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게 다가가려고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이다 또다시 물에 빠졌다.

- 퐁당

"화키아... 소리가..."
"소리? 나뭇가지라도 떨어진 모양이지. 그보다 빨리 가자! 왜 걸핏하면 이런 음침한 곳에 와서 춤추고 있는거야? 몇 년 후면 나랑 같이 금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테니까 춤은 거기서 추란 말야!"
"......"
"그만 뒤돌아보고 빨리 와!"

물 속에서 바둥대다 겨우 고개를 내미는 순간, 오리는 '그것'의 눈을 보았다. 굉장히 쓸쓸하고, 또 어딘가 슬퍼 보이는 눈. 알에서 깨어나서 처음 본 '그것'에게 그리움과 연민과, 그리고 뭔지 모를 애절한 감정을 한꺼번에 배워버린 오리는 꼬르륵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 오리는 태어나서 제일 처음 본 것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떨까, 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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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상상해본, 프린세스 츄츄 1화 이전의 이야기.

<츄츄>에서 뮤토에게 마음- 즉 감정을 되찾아주는 것은 츄츄입니다만, 그 이전에 오리일 뿐이었던 아히루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심어준 건 뮤토였지요. 물론 오리가 인간 왕자님을 사랑한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만든 건 드씨영감일테고 말입니다. 그러한 연관관계를 토대로 써본 이야기입니다.

by 고이 | 2005/04/23 01:18 | 취향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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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외로운 마음 ~ 츄츄 테스트 &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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