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14일
우테나 문집 도착.
흐느적대며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모니터 옆에 턱하니 놓여 있는 우편물이었다. 그것이 책 크기를 하고 있다는 것과 보낸 사람 이름이 언젠가 문집비를 입금할 때 기억했던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가위로 포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오늘, 집에 일찍 돌아오길 정말로 잘했다고 몇 번이나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애초에 오늘 도착할 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우테나 문집 재판본의 통판 예약은 이미 몇 주 전에 해 두었지만, 배송일을 듣고는 빨라도 화요일이나 수요일 즈음에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우리나라 우편사정을 크게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첫 예약을 놓쳤을 때, 나는 크게 상심했다. '소녀혁명 우테나'라는 애니는 결코 메이저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마이너라고도 할 수 있는 애니. 그렇기에 '소녀혁명 우테나'라는 하나의 애니만을 주제로 하여 진지하고 열정적인 세미나가 열렸던 것도, 그 세미나에서 발제되었던 발제문을 모은 하나의 책이 나왔다는 것도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가 그러한 기적이 몇 번이고 더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는 기회 그 자체였던 것을, 나는 놓쳐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우테나 문집 재판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 계획이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놓쳤던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았다.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잡았음을 증명해주는 문집이 눈앞에 있는 지금, 기쁘다는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햇살 좋은 거실에 앉아 문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으며, 문득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 보일까? 원하던 것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에 우테나를 보며 느꼈던 감동과 충격과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던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뒤섞인 감정이 다시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발제문 하나하나마다 -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글이든 혹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파고든 글이든 - 그 감정을 불러내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한 단어를 발음하는 것을 듣는 것 같았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이 말하는 단어를 따라하게 되는, 함께 말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기분.
어쩐지 외롭지 않다.
# by | 2005/03/14 22:56 | 취향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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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감사드립니다-. ^_^;
권순구 / 제가 더 감사드릴 일인걸요- !_! 순구님의 발제문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애인군이 군대에 있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쉬웠던 점도 있지만(웃음), 우테나의 세계와 현실의 '내'가 맞닿아 있는(혹은 재현되기도 하는) 부분에선 깊이 공감하며 몰두해서 읽었답니다.
여러모로 수고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