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만에 최고로 우울한 한 달을 보내는 중. 차라리 슬프다면 좋겠는데 우울한 건 대책이 안 선다. 내장이 다 어떻게 되어버린 건지 먹는 것마다 소화를 못 시켜서 뭐든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다. 걸핏하면 한쪽 머리가 지끈지끈하게 아프고 들쑥날쑥한 걸 애써 눌러 평정을 유지하던 감정도 간단한 자극 한 번이면 푸욱 가라앉아서 어지간히 눈물을 짜내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고 잠이라도 자려고 누워도 가슴이 답답해서 숨쉬기가 힘들다. 햇볕을 쬐며 음악을 들으며 걸어도 무기력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질 뿐이다. 술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작년에 알았으니 올해는 담배에 도전해볼 차례인가 생각하는데 숨이 턱턱 막히는 그 연기를 도저히 내 입안에 머금을 자신이 없다. 아, 그래도 어린애처럼 식칼이나 집어들어 보고 옥상에나 올라가 보고 하는 머저리같은 짓을 안 하게 된다면 해볼만할 것 같다. 그래도 다른 건 다 참아주겠는데 십대 청소년마냥 틈만 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도저히 못 참겠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되어도 자신이 그렇게까지 한심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냥 그럴만해서 속이 이렇게 상하는 거지 하는 최소한의 합리화라도 했는데, 지금은 내 시각이 어떻게 바뀐건지 몰라도 이런 자신이 아주 멍청해 보여서 견딜 수가 없다. 심지어 그 흔한 연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비참한 자신을 달래고 쓰다듬어줄 사람을 찾을 생각도 안 든다. 나는 비참한 게 아니라 그냥 바보같은 거니까.
화가 난다. 그런데 무엇에 화를 내야 하는 건지, 아니 애초에 내가 화를 내도 되는 대상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화를 내는 건 그저 이유도 없는 짜증이고 신경질이고 무언가에 대한 분풀이일 뿐이지 뭔가 객관적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 하에 나온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라니까 말이다. 그럼 생겨서는 안 될 감정이 대체 왜 생기는 건데? 내가 비정상적으로 예민하고 만사에 걱정만 하는데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인간이라서? 나라면 내게 소중한 사람이 그런 상태라면 더 신경써주고 더 많이 보듬어줄텐데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내버려둘 뿐이다. 다들 지쳤으니까. 받아주기 지긋지긋하니까. 그런데 그러고 있으면 내가 나아지는 건가? 나도 내가 혼자 처박혀 있으면 더이상 화낼 상대가 없으니까 그냥 알아서 멀쩡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더 화가 치솟더라. 랜덤하게 떠오르는 확 돌아버릴 것 같았던 기억들이 더 이상 누구에게도 화를 낼 수 없는 나를 매우 조롱한단 말이다. 네가 내 앞에서 뭘 할 수 있니, 하고. 무능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이만하면 그냥 포기해버릴 만도 한데 그걸 억지로 붙들고 뭐라도 해보자고 애쓰는 자신이 바보같은 건지 제정신이 아닌 건지 모르겠다. 정말 마음에 안 들고 짜증나고 한심하고, 이거 다른 사람이었으면 나를 보는 다른 인간들처럼 그냥 포기하고 무시해버릴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나밖에 나를 잡아줄 사람이 없거든. 나밖에 나를 지탱해줄 사람이 없거든. 머저리가 머저리를 잡아주고 지탱해줘봐야 둘 다 넘어지고 마는 거밖에 경우의 수가 없지만서도 그래도 그 뿐이라서. 그래서 필사적으로 멀쩡한 척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젠장. 부정적인 감정은 표출조차 막아버리고 태연한 척 웃는 것만 보려고 드는 것들이 뭘 안다고 도리어 내게 화를 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자신을 긋지 않을 식칼을 손에 쥐는 순간 깨달았다. 아, 다시 시작이구나. 작년부터 올해까지 슬프고 우울한 일들을 겪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었던 건 자신을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멍청한 수준까지 오지 않아서였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왔다. 아아, 빌어먹을. 이번 주까지만 살펴보고,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야 할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제발 일시적인 거였으면 좋겠다...